문뜩 옛 기억이 난다. 등반을 처음시작했을때 자일내구성과 장비의 신뢰도를 알지 못하던 시절의 기억이다.


그 때는 등반을 마치고 오면 살아서 돌아온 기분과 성공(등반참석)에 따른 성취감이 제법 클때였다. 그 여운은 일주일을 보내는 힘이 되었고, 설레임을 느끼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또한 등반참석을 할지 말지?에대한 스스로의 싸움의 시간이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그 기억도 익숙함이 되어 좋기는 하지만, 일상이 되어버린것만 같아 정적인 기분이 좋지만은 않다.


이번주는 간현 졸업식이 있어 간현으로 향했다. 등반실력과 경험이 길어질수록 생각의 폭이 넓어지고, 짐도 무거워 진다.

처음 등반을 시작했을때 대둔산을 간적이 있다.


대둔산을 오르는데 인기코스는 대부분 밀리기 쉽상이었고, 비인기 루트는 여유가 있었다. 그때 선배님에게 물어보았다. 저기는 여유가있는데 저쪽으로 가면 안되나요?


선배님이 하는 이야기에는 여러가지가 있었는데.... 우리팀에 초보자가 많아 저기는 시간이 많이 걸리고, 난이도가 높다고 하였다.

난이도는 대략 11A 정도 였다.


그때 드는 생각이 지금까지 자리잡고 있다. 나중에 11A정도는 인공이든, 자유등반이든 갈수 있을 정도로 실력을 만들어 보자! 라는 목표였다.


나는 목표감이 강한 반면 스스로 만족하는 것도 강하다. 하지만 느낌이 좋지 않다. 간현을 가면 멀티등반을 주로 하는데 멀티코스는 수도없이 올라가 봤다.


이제 내 마음속에 간현은 갈수 있는곳, 가지 못하는곳 두개로 분명이 나뉘게 되었다. 등반이 지루해진 것이다. 여러가지 요소가 있지만 강력한 요소는 더 노력(도전)하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간현암에 있다보니 도전하지 않는 것은 클라이머로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집에 와서 와이프한테 이런이야기를 해보니 와이프는 ....왜이렇게 진지해/...  그냥해"" 하면서 지나갔다. 정답이다.


더 어려운것에 도전해야 한다는걸 알았다.


2020년에 들어 임원진 개편이 되었다. 작년까지 느끼지 못한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번에 여대장이 섭섭함을 강하게 표현하였다.

술 때문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섭섭함이 뭉쳐 표현될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차안에 누워 곰곰히 생각을 했는데..처음에는 여대장이 단체를 고려하지 않는지에 대한 문제로 생각하였고, 두번째는 골수형들이 여대장을 잘못 동요시켰다고도 생각했다. 그리고 형들의 대장을 떠넘겼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은 내 문제였다. 만일 은기형이 대장을 했다면으로 시작했는데...그랬다면 먼저 오는일도 없었을 것이고 늦는다고 해서 형들도 불만이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항상 그래왔었다.


총무는 거기까지 생각을 했어야 했다. 그날 등반을 마치고 준서가 한판더 한다고 했을때 사실 불만이 있었다. 사람들 기다리는데 뭐하는거지? 라고 말이다.


나는 내생각만 하지말고, 내가 준비를 하러 가더라도 한사람을 남겼어야 했다.  난 그냥 매정하게 돌아선 것이 었다.


우리는 이부분을 단순히 한사람의 실수로 보지 않았으면 한다. 모두가 알아야 하고 책임을 느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