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반일지 : 2012년 7월 22일

참가자 : 한찬우 대장, 박희식, 김재곤, 정은기, 허용욱, 한미옥, 이동천, 김지영, 강인선(9명)

등반지 : 도봉산 (경송A, 진달래, 외벽(쇼생크탈출))

쇼생크탈출은 아직 역량 부족인가 봅니다.

후기를 쓰려니 쓸 내용이 너무 많습니다. 소재가 풍성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무엇을 먼저 써야할 지 난망합니다.

아무래도 순서대로 기술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긴 한데, 이번 만큼은 그런 서술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오늘 등반은 등반을 시작한 이후 가장 기억에 남을 일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간 순서에 연연하지 않고 기술해 볼까 합니다.

7월 22일, 등반하기엔 최악의 날씨였습니다. 폭우가 쏟아져 산행도 어렵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늦뫼의 전통은 모인다는 것입니다. 쏟아지는 빗줄기를 보니 암벽등반은 언감생심이었습니다. 저는 서슴없이 등반장비를 내려놓았습니다. 솔직하게 말한다면 아직은 암벽등반보다는 워킹이 더 좋았기 때문에 차라리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고민하지 않고 등반장비를 배낭에서 꺼냈습니다. 등반장비를 배낭에서 모두 꺼내고 간단하게 행동식만 챙겨서 집을 나섰습니다.

약속장소에 도착할 때까지 비는 줄기차게 내렸습니다. 제 판단이 옳았다고 새삼 느끼면서 포돌이광장에 8시 30분에 도착했습니다. 이미 대장을 비롯하여 늦뫼식구들이 거희 모두 나와 있었습니다. 그때까지도 비는 줄기차게 내렸습니다. 오늘은 전주(前週)처럼 워킹이라는 생각이 100%들었습니다. 전주에 우중산행을 한 경험도 있고 하여 오늘 워킹은 재미나게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저만 그런 것이 아닌듯합니다. 박희식 선배와 김재곤 선배, 허용욱 선배도 차에 등반장비를 놓고 산행하기로 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늘을 보니 먹구름이 몰려오는 것이 금방 멈출 비가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하늘을 보면서 기다리고 있는데 등반열정 하나만큼은 정은기 선배와 버금가는 인선이가 택시 뒤꽁무니를 잡고 나타났습니다. 그렇게 9명이 모여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빗속을 뚫고 한발 한발 산을 오르는 발걸음은 산뜻했습니다. 녹음이 우거진 숲은 고즈녁했고, 등산객은 늦뫼산악회 이외에는 없어 보였습니다. 시원하게 쏟아지는 낙숫물 소리와 빗방울의 리듬감을 즐기며 우중산행을 만끽하며 정상을 향해 전진해 갔습니다.

비는 오는 데다 습도까지 높아 움직일 때마다 닭똥 같은 땀방울이 연신 등줄기와 얼굴로 스며들었습니다. 산을 오르는 동안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형세는 그야말로 장관이었습니다. 운해가 만들어내는 신비한 산의 풍경은 한시도 똑 같은 모양이 아니었습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계곡물에 세수를 하고, 손수건을 빨고, 눅눅한 낙엽을 밟으며 정상을 향해 전진했습니다. 출발한 지 2시간 남짓만에 첫 휴식이 있었습니다.

1차 휴식처는 거벽(일명 비박장소)이었습니다. 연신 쏟아지는 빗줄기를 피한 거벽은 정말로 컸습니다. 늦뫼가족 9명이 오순도순 이야기 꽃을 피울 정도로 큰 공간이었습니다. 따듯한 커피를 빙 둘러 앉아 마시며 등반하느라 몰랐던 회원들 간의 개인사를 듣는 소중한 시간들이었습니다. 등반이 목적이긴 하지만, 회원 상호간의 돈독한 유대감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회원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깝게는 다음 주 산행에 대한 이야기부터 멀게는 늦뫼산악회의 미래까지 폭넓은 의견을 나눈 유익한 자리였습니다. 그 중에는 주중에 시간이 되는 회원들은 당고개, K2, 뚝섬외벽에서 스포츠클라이밍을 할 수 있었으면 하는 의견들이 많았습니다. 당고개 맴버는 대략 목요일로 의견이 좁혔습니다. 시간이 되는 회원은 목요일 오후 6시 이후부터 무조건 모임이 있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기타 다른 장소는 의견들이 분분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휴식 시간을 이용하여 늦뫼가족 턱걸이 대회가 열렸습니다. 빗물에 고인 홀드를 잡고 하는 턱걸이 대회는 그야말로 웃음을 자아내기에 충분했습니다. 턱걸이 대회의 우승자는 당연히 정은기 선배님이었습니다. (후배들이 붙여준 이름은 ‘머신’입니다.) 손가락 힘만으로 사뿐사뿐 턱걸이 하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운동을 해야 저런 자세가 나오나 모두가 부러워했습니다. 한찬우 대장, 박희식 선배, 김재곤 선배, 허용욱 선배, 한미옥 등 쟁쟁한 선배님들과 나란히 시합을 펼친 동기 지영이 실력도 출중했습니다. 박희식 선배의 왈 “나도 턱걸이는 좀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거 내 자신이 초라해서 어디 견딜 수가 있나?”하면서 다시 매달려 보아도 몇 번 못 하였습니다. 저는 죽을 힘을 다해 한 개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철봉에서 10개 하면 여기에서는 한 개 정도 한다고 보면 될 듯 했습니다. 그러는 중에도 비는 계속 내려 시야를 확보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비는 내리고 턱걸이 시합은 계속되었습니다.

거벽에서의 턱걸이 체육대회를 마치고, 다시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계곡물은 불어나고, 온몸은 땀과 비로 범벅이 된 후에야 경송A 코스 아래에 2차 휴식처를 마련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등반학교 시절 교육을 받았던 장소였습니다.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2차 휴식처에서 늦은 점심을 해결했습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먹는 것만큼은 풍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저것 각자가 싸온 음식들을 풀어 놓으면 웬만한 뷔페식당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 풍성한 것이 늦뫼의 식탁입니다. 그런 중에도 한찬우 대장님은 등반에 미련이 계신지 자꾸만 핸드폰으로 날씨를 검색하고 계셨습니다. 제가 보기엔 등반은 도저히 불가능한 날씨인데도 말입니다.

점심을 마치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대장 왈

“자일 걸어놓고 톱로핑 방식으로 슬랩 연습이나 하지?”

이게 무슨 청천벽력같은 말인가요? 등반장비도 없을 뿐만 아니라 아직도 가는 비가 내리는 데 어떻게 슬랩 연습을 한다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화창한 날씨에 슬랩 연습을 해도 어려운데 물기를 흠뻑 먹은 바위를 슬랩 연습한다니 어이가 없었습니다. 저는 그냥 지나가는 말로 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회원 하나둘 등반장비를 챙기는 것이었습니다. 허걱!! 이건 무슨 시추에이션이란 말인가요?

희식 선배님이 먼저 슬링과 카라비너를 이용하여 하네스를 만드는 것이 아닌가요? 그 옆에서는 은기 선배가 선등준비를 마치고, 미옥과 인선이, 지영이도 개인장비를 착용하는 것이 아닌가요? 한찬우 등반대장은 이미 등반장비를 챙겨서 경송A 코스를 오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요? 정말로 어이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등반이 좋다고 하지만,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냥 넋 나간 사람처럼 회원들의 모습만 지켜봐야 했습니다. 등반 루트도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습니다.

진달래길은 정은기 선배, 김지영, 한미옥(1조)과, 박찬우 대장, 박희식 선배, 강인선(2조)의 등반 모습을 재곤 선배, 용욱 선배, 저는(개인장비 미준비자)그저 구경했습니다.

바위가 물에 젖어 초크는 무용지물이고, 크랙에서는 빗물이 흘러 내리고, 바위 중간 중간에 푸른 이끼는 미끄름틀과 진배없었습니다. 그런 악조건을 뚫고 등반을 하는 모습이 그렇게 좋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선인봉 사방 어디를 둘러 봐도 암벽등반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말 그대로 선인봉을 늦뫼가 통째로 전세를 얻은 형국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간간히 몇 방울씩 떨어지는 비도 가슴 졸이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했습니다.

선인봉 전체가 운해로 시야를 확보할 수 없는 상황이 순간순간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했습니다. 경송 A길 2피치를 오르는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질 정도로 앞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1조와 2조는 묵묵히 전진해 나갔습니다. 그것을 보고 있자니 몸이 근질근질해 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느새 개인장비 미착용자들도 조금씩 등반을 하고 싶은 마음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괜히 크랙을 잡고 오르기도 하고, 밑에서 릿지화를 신고 슬랩을 오르내리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등반 강의가 이루어졌습니다.

특급 강사의 경우 강사료는 부르는 것이 값입니다. 그런데 저는 정말로 기라성 같은 선배 네 분에게 특별 강습을 받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그것도 공짜로 말입니다.

대개는 1:1 맞춤이 환상적인 교수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1:4의 교수법을 지도 받았으니 이 얼마나 감개무량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학생 하나에 선생 네 명이 붙는 경우는 들어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7월 22일 선인봉 늦뫼산악회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늦뫼 신입회원 이동천, 김지영, 강인선은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스파르타식 맞춤형 교육을 받았습니다. 등반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슬랩에 대한 집중적인 교육이 이루어졌습니다. 명 강사는 한찬우 대장, 박희식 선배, 김재곤 선배, 허용욱 선배님이었습니다. 솔직히 다른 산악회라면 모두가 선등을 설 수 있는 분들입니다. 그런 분들에게 특별 강습을 받는 다는 자체만으로도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떨리는 것이 사실인데, 그것도 네 명이 한 명을 집중적으로 지도하는 상황이 벌어졌으니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그것도 단발적인 교육이 아닌 한 동작 한 동작에 대해 밑그림을 그리듯 철저하게 교육을 받은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감히 말하지만, 정등학교에서도 이렇게 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네 선생님이 한 명의 제자를 집중적으로 가르치는 것은 눈 씻고 찾아 봐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7월 22일 선인봉 경송A길에서 분명히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정은기 선배님은 김지영을 진달래길에서 직접 교육을 시켰고, 저와 인선이는 경송A길 1피치에서 슬랩 연습을 교육 받았습니다.

몸의 자세, 중심 이동, 손과 발의 착지점 확인법, 쉬는 요령, 전체적인 루트 파인법 등을 배웠습니다. 제가 등반 세계에 발을 들여 놓고 가장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교육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그것도 대선배의 직접적인 교육을 받았다는 것은 영광을 넘어 분에 넘치는 사랑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대개 등반학교의 경우 맛보기 정도의 교육만 받았고, 바로 실전에 투입되었습니다.

짧지만, 교육효과 만점인 슬랩 연습은 오후 4시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동안 따라다니며 습득했던 것을 거울삼고, 새로운 등반 기술을 익히는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등반 세계의 터닝 포인트를 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우스갯소리로 ‘늦뫼 아니면 다 보내주십시오.’에서 보여주듯, 늦뫼 산악회에 대한 왜곡된 정보가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지금은 2012년 졸업동기들 중에서 ‘늦뫼산악회’로 배정 받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동기들이 있다는 소문(?)입니다. 정등의 5개 산악회 중 가장 체계적이고 가장 모범적이며, 가장 솔선수범인 산악회는 ‘늦뫼’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신입회원들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과 애정은 뭐라고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확실합니다. 그런 타고난 복은 인복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참, 앞서 얘기할 것을 빼 먹었습니다. 비가 오는 이유로 저는 등반장비를 집에 두고 왔기 때문에 암벽 밑에서 구경만 했습니다. 그런데 등반대장이 경송A길 2피치를 끊고 내려왔습니다. 하강하면서 등반대장이 1피치에 톱로핑 방식으로 자일을 설치했습니다. 박희식 선배와 한찬우 선배가 이심전심이었나 봅니다. 그렇게 하여 신입회원은 느닷없이 교육에 투입된 것이었습니다.

저는 한찬우 등반대장의 하네스와 암벽화를 빌려 신고 교육을 받았습니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라고 뒤풀이 자리에서 미옥 씨에게 들었습니다. 등반대장의 암벽화는 그날 어림짐작으로 1만원 정도를 해 먹었다고 생각합니다. 밑창이 불이 날 정도로 슬랩은 터졌습니다. 발가락 힘이 없는 데다 물에 젖은 암벽은 그렇잖아도 슬랩에 자신이 없는 데 더욱더 위축되었습니다. 그런데다 대장의 암벽화는 제 마음도 몰라보고 속절없이 계속 터지고, 암벽화 터질 때마다 안절부절하는 대장의 모습을 보자니 어디라도 도망가고 싶었습니다.

김재곤 선배의 차근차근한 설명, 박희식 선배의 희생적인 빌레이, 찬우 선배와 용욱 선배의 측면 지원 등 종합선물세트로 슬랩을 배웠습니다. 일일이 교육 내용을 소개할 수 없을 정도로 세심한 교육을 받았습니다. 이런 교육은 앞으로 전무후무하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로 열정적이었습니다. 정말로 하나 하나 세밀한 지도를 펼쳐놓고 지도 보는 법을 배우듯 슬랩 연습을 했습니다.

물기 젖은 바위에서 슬랩 교육 받는 기분은 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설명을 하여도 모를 것입니다. 이날의 슬랩 연습은 두고두고 회자되지 않을까 생각되었습니다. 뽀송뽀송 말라도 오르기 힘든 슬랩을 물먹은 상태에서 하기란 몇 배 힘들었습니다. 1분을 발가락에 힘을 주고 서 있는 것도 힘들 정도로 고된 훈련이었습니다. 땀은 안경알을 너머로 뚝뚝 떨어지고, 바위에 서 있는 것이 정말로 힘이 들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진달래 코스에서는 지영이가 물먹은 암벽을 오르기 위해 기를 쓰고 있고, 서드인 미옥이 팔 굽펴 펴기를 하는 모습이 비현실적으로 보였습니다. 늦뫼의 차세대 리더인 지영이 혹독하게 훈련을 받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늦뫼의 미래는 밝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습니다.

“동천이는 너무 급해, 잘할 수 있는데 너무 서두른다.”

“인선이는 남자처럼 등반을 하도록 노력해봐. 너무 예쁘게 한다.”

“지영이는 나무랄데 없이 좋은데, 과감성이 부족하다.”

김재곤 선배의 교육 총평입니다. 다양한 의견과 맞춤형 코치는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가장 중요한 내용은 위 내용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다양한 선배님들의 멘트를 달려고 하면 하루 종일 말해도 안 될 것 같아, 재곤 선배의 총평으로 이날 신입회원들의 교육 평가를 대신하겠습니다.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진짜 이야기는 이제부터라고 하여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슬랩 연습으로 자신감을 얻은 저는 등반대장의 명령(?)으로 외벽을 배정받았습니다. 아직도 선인봉에 몇 개의 루트가 있고, 어떤 코스가 난이도가 높고 낮은 지 아직 모릅니다. 그냥 배정해 주는 대로 따라 다녔습니다. 슬랩 연습으로 자신감이 붙었던 저는 두말 않고 따라 나섰습니다.

정은기 선배의 리딩, 세컨 김재곤 선배, 서드에 저 이렇게 외벽으로 자일 두동을 메고 출발했습니다. 김재곤 선배님은 대장의 하네스와 암벽화를 렌탈하고, 저는 지영이의 하네스와 암벽화를 렌탈했습니다.

촉촉하게 젖은 바위를 밟으며 경송 A길 우측으로 돌아 외벽 하단에 올라갔습니다. 막상 외벽 루트의 출발점에 섰을 때 ‘괜히 따라 왔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습니다. 깎아지른 절벽과 날선 바위를 보면서 내 실력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코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어리광부리듯 ‘저는 못하겠습니다’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은 이미 벌어졌습니다. 은기 선배가 벌써 출발을 하였고, 재곤 선배가 빌레이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산악회에 배정받아 무작정 따라 다녀보니 기초는 부실하고, 전혀 능력이 안 되는 코스에서는 어김없이 두레박으로 건져 올려지는 사태가 벌어지곤 한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기 실력으로 오르지 않았으면서도 ‘의대길을 갔다 왔네’, ‘동양길을 갔다 왔네’, ‘영길을 갔다 왔네’ 라고 떠벌리는 우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저는 ‘외벽’을 오르면서 그것을 깨달았습니다.

물론 햇볕 쨍쨍 나고, 바위가 살아 있을 때 올랐다면 좀 더 나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물먹은 바위와 빠삭빠삭 마른 바위와는 천지차이이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변명이 무슨 소용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건에 맞는 등반은 없습니다. 상황별로 대처하고 그에 따라 등반을 하는 것이지, 햇볕 좋을 때 딱 맞춰 등반을 할 수 있는 것은 몇 번 없을 것입니다.

외벽 1피치는 발째밍과 손째밍으로 오르는 코스였습니다. 크랙으로 물은 흐르죠. 크랙은 잡기만 하면 터지죠. 고도감은 높죠. 진퇴양난이었습니다. 밑에서 배운 슬랩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습도는 높아 땀방울이 연신 안경알로 흘러 내렸습니다. 제대로 째밍은 안되어 그야말로 매달려 있는 형국이었습니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누구의 도움이 필요 없는 것이 암벽입니다.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것이 암벽입니다. 죽느냐 사느냐는 매달려 있는 자만이 선택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냥 죽기 살기로 치고 올라갔습니다. 1피치 올라가는 것이 왜 이리 어려운지 정신이 번쩍 났습니다.

1피를 끝내고 간신히 올라간 선 곳은 거의 80도 경사도였습니다. 그런데 그 유명한 쇼생크탈출이 시작되는 2피치는 눈 앞이 깜깜했습니다. 은기 선배와 재곤 선배의 모습을 보면서 쉽겠다고 생각한 것은 그야말로 오산이었습니다. 두 선배가 오르는 모습은 힘들지 않게 오르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2피치 시작지점부터 그야말로 한 발자국을 떼 놓지 못할 정도로 날선 각이었습니다. 그야말로 가슴에 바위가 찰싹 달라붙는 느낌이었습니다. 1피에서 2피를 바라볼 때는 양각이 선명해서 슬랩에 자신감을 가지고 올라온 제가 뛰어가도 될 정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바위에 붙고 나니 생각은 정 반대였습니다. 옴짝달싹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바위가 서 있었습니다.

등반학교를 졸업하고, 산악회를 따라 몇 코스의 길을 갔었지만, 이번 쇼생크탈출 길은 가장 힘든 난 코스였습니다. 아시다시피 바위에 올라서면 자신이 선택하는 것입니다. 짧은 구간이었지만, 제가 제대로 오른 길은 두 발자국 정도였고, 나머지는 두레박질로 끌어 올려진 등반이었습니다. 너무 비참하고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늦뫼이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에서 타 산악회를 두고 왈가왈부할 수는 없습니다만, 최소한 좋은 선배를 둔 덕에 미리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은 나름 사실이 아닐까 생각되었습니다.

고도감과 함께 쇼생크탈출을 하면서 느낀 점은 많았습니다. 전혀 준비하지 않고 와서 가장 많은 교육을 받고, 가장 많은 등반을 할 수 있었던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좋은 산악회를 만났기 때문이다’라고만 말한다면 너무 빈약할 듯 합니다. 그건 아마도 애정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애정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등반을 하는 사람들에게 욕심은 등반욕심입니다. 그런데 그런 귀중한 시간을 내서 후배에게 하나라도 가르쳐주려고 하는 것은 애정 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물론 비라는 횡재가 없었으면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것도 운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쇼생크탈출 후 하산하면서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장의 솔선수범, 희식 선배의 아낌없는 후배지도, 재곤 선배의 꼼꼼한 가르침, 은기 선배의 추진력, 용욱 선배의 즐길 줄 아는 등반, 미옥 씨의 열정, 차세대 선두주자 지영 씨, 빵보다 암벽을 더 좋아하는 인선 씨를 보면서 늦뫼가 등반만이 아니라 다른 부분에서도 서로 서로 아껴주고 이끌어 주는 차별화된 산악회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언젠가 선배님들이 이런 말씀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너희는 아직 늦뫼식구가 아니다. 1년 동안은 지겨본 다음에 식구로 받아줄지 말지 결정할 것이다.”

늦뫼의 프라이드이기도 한 말이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인터넷에서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암벽산악회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아름다운 산악회를 이끌어 가겠다는 간곡한 표현으로 들렸습니다. 산악회는 수없이 많습니다. 불미스러운 일로 인해 조기에 깨지는 경우도 있고, 회원 간의 불신으로 인해 조직력에서 느슨한 산악회도 많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늦뫼는 그런 부분에서 아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회원 상호간 끈끈한 정이 흐른다고 생각합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산악회든 어떤 모임이든 단체 가입은 처음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더 애착이 가는 것도 사실입니다.

뒤풀이에서도 이야기가 나왔지만, 앞으로 또 다른 후배들이 들어오고, 규모가 커지면서 조금씩 초심을 잃을 지도 모릅니다. 그때 2012년 1기 암벽반 졸업생이 모범이 되어 이끌어갈 역량을 우선적으로 갖춰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분한 사랑과 애정을 듬뿍 받는 것은 역시 첫째 놈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2012기 1기 신입회원 세 명은 축복받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비오는 가운데 가르침을 주셨던 대장님 이하 모든 선배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PS

♧ 도봉산 약수터에 누군가 콘크리트를 발라 자연을 훼손한 모습을 보면서 대장님 이하 많은 늦뫼 회원들이 분개했음을 전합니다. 또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자꾸 훼손하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합니다.

♧ 후기를 제가 독점하다보니 회원 분들의 기회를 뺏는 것 같아 잠시 접습니다. 동기들아~너희가 후기란에 분탕질을 쳐라. 그래야 홈피가 활성화 된단다.

♧ 대장님 암벽화 및 하네스 렌탈 비용은 차근차근 갚도록 하겠습니다. 더불어 지영이 하네스와 암벽화도 고맙게 잘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