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반일자 : 2012년 9월 9일

참가자 : 이정녕 선배님, 이동천, 김지영, 강인선(4명)

등반지 : 선인봉 (표범길, 박쥐길)

박쥐 표범의 등을 타고 날다.......

살다보면 가끔은 기막히게 좋은 일만 생길 때가 있다. 그게 샐리의 법칙이란다. 근 한 달 간 등반하고 싶은 마음에 몸은 근질거리고, 생각은 온통 산에 가 있고, 일손(?)은 안 잡이 고, 괜히 성질만 냈다.

집에서 하늘을 보면서 ‘이런 날 등반하면 기막힐 거야, 아~한숨만 나오고.... ’그렇게 곰이 인간으로 태어나기 위해 밥만 먹고 30일을 참았다. 그렇게 하여 인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인간으로 태어나 처음 깨달은 것은 한 손에 든 것을 내려놓아야 다른 물건을 들 수 있는 것이었다. 버려야 얻는 것인데. 버리지 않고 얻으려고만 하니 힘만 든 것이 사실이었다.

그래서 버렸다. 과감히. 술을....그리고 얻었다. 등반이라는 세계를....

선배님들의 실전경험을 그대로 차용하여 베란다에서 무한정 산만 보기도 하고, 실성한 사람처럼 베란다 기둥을 홀드 잡듯 잡아보면서 처량한 눈빛으로 구걸(?)하여 얻은 등반 허락. 천우신조로 다시 되찾은 등반. 그런데 비가 온다는 소리에 그만 정신이 혼몽하고, 짜증의 RPM이 치솟기 시작했다. 어째 이런 일이......

토요일 새벽녘에 비가 억수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토요일 등반을 포기해야 할 상황이었다. 등반포기를 기정사실화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비가 올듯 말듯 판단이 서지 않았다. 와이프는 비가 올 모양이라며 ‘등반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의견이었으나...그건 가지 말라는 무언의 통보나 마찬가지였다. 일요일 날씨를 검색해 보니 비가 오지 않는다고 나왔다. 내일을 위해 오늘은 쉬는 것으로 쓰린 속을 달랬다.

일요일 새벽 5시에 눈이 떠졌다. 밖을 보니 뿌연 하늘이 비라도 내릴 듯 했다.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엎치락뒤치락 거리며 1시간을 버티고 다시 일어나 창밖을 보니 구름이 걷히는 것이 육안으로도 확연하게 보였다. 부리나케 일어나 아침밥을 챙겨 먹었다. 산을 타기 위해서는 아침을 든든히 먹어야 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았다. 아침을 먹고, 가지고 갈 포도도 씻고, 원두커피도 내리고, 등반장비를 일일이 점검했다. 초등학교 소풍가는 마음이 꼭 이랬을 것 같다.

포돌이 광장에 가니 인선 씨가 먼저 와 모닝 커피를 마시고 있다. 인선 씨는 연 이틀을 등반하는 것이었다. 체력이 많이 좋아진 것만은 확실해 보였다. 나는 등반을 한 다음 이틀 동안은 놀랜 근육들 달래느라 고생인데, 인선 씨는 아무렇지 않은가 보았다.

커피를 마시며 그동안 못 나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데 이정녕 선배님이 오신다. 그 뒤를 따라 지영 씨 도착. 이렇게 우리 4명은 포돌이 광장에 모였다. 날씨는 약간 흐렸지만 나름대로 등반을 하기엔 좋은 날씨 같았다.

이정녕 선배님의 ‘출발’신호를 받고 우리는 선인봉을 향해 올랐다. 비가 온 후의 산의 빛깔은 깨끗했다. 계곡에서 힘차게 흐르는 물소리와 매미 소리가 가을이 깊어 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두런두런 아기자기 알콩달콩 옹기종기 이야기를 나누면 4명은 오늘의 등반지를 향해 걸었다. 발걸음은 더없이 산뜻했다. 그런데 이정녕 선배님이 어제 약주를 하여 컨디션이 좋지 않음을 알았다. 에궁, 이건 아닌데....걱정반으로 기대반으로 표범길에 도착한 것은 대략 10시 였다. 바로 정리하여 오르자는 선배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셋은 바로 뒤를 따랐다.

선등은 이정녕 선배, 세컨드 김지영, 서드 나, 포드 강인선이 섰다. 정말 가보고 싶은 길이었다. 선인봉 하면 표범길과 박쥐길을 가장 기본으로 생각하는 길인데 그 길을 가보지 못한 것이 항상 마음의 짐처럼 여겨졌다. 오래전 표범길 1피치를 오르다 비 때문에 하강한 경험 때문에 더욱 가 보고 싶은 길이기도 했다.

이정녕 선배님이 첫 피치 스타를 했다. 선배님의 선등 모습을 보면서 조금 걱정을 했다. 어제 마신 술 때문에 컨디션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주 가볍게 1피를 오르는 모습을 보면서 인선 씨와 나는 역시 감탄을 자아냈다. 이정녕 선배님은 몸이 가벼운지 크럭스 구간을 아주 사뿐히 올랐다.

세컨드인 지영 씨가 어제 한 운동이 아직 풀리지 않았는지 조금 헤맨다. 그 모습을 보면서 걱정이 앞섰다. 지영 씨가 저러면 난 더 할텐데. 한달간 운동을 하지 못하다 느닷없이 오르는 표범길이기에 약간 당황스러웠다. 그렇지만 자신감만큼은 충만했다. 나는 겁 없이 1피치를 시작했다. 역시 어려웠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쉰 것에 비하면 괜찮은 편이었다. 1피치의 동판을 역시 버벅거리며 오른 것을 빼고는 그렇게 힘든 구간이 없었다. 2피치와 3피치, 4피치 모두 나름대로 재미있었다. 바위를 오르면서 재미있다는 생각을 가져 보기는 처음이었다. 항상 죽도록 어려웠고, 왜 오르는 지 몰랐다. 오르면서 여유 있게 주변도 구경하는 여유도 생겼다. 기분 나뿐 구간에서는 약간 긴장도 되었지만, 그런 그간도 나름대로 재미있었다.

오르면서 하늘을 보니 등반하기에는 더없이 맑은 날씨였다. 멀리 서울 시내가 한 눈에 보일 정도로 시야가 뻥 뚫렸다. 등반을 시작하면서 이렇게 여유롭기는 처음이었다. 표범길은 우리팀 이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정녕 선배님 외 우리 셋 모두 자신의 페이스로 올랐기 때문에 평소 실력보다 더 잘할 수 있었다. 특히 인선 씨는 예전에 3피치에서 발을 옮기지 못한 트라우마를 극복하여 여간 다행스럽지 않았다. 표범길을 재미있게 완등한 후 인증 사진을 촬영하면서 오전 등반을 마무리했다.

안전 하강 후에는 인선 씨와 지영 씨가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라면파티를 못한 아쉬움이 있었지만, 나름 준비해 온 음식들로 에너지를 보충한 다음 박쥐길에 올랐다. 오전 과 동일한 순서로 올랐다. 인선 씨와 지영 씨는 박쥐길을 올라본 경험이 있었다. 나는 처음이었지만, 컨디션이 좋아서 그런지 쉽게만 보였다. 2피치에서 오를 때 한번 추락한 것 이외에는 전 구간이 평범했다. 그렇게 박쥐길을 올랐을 때가 오후 6시가 넘었다. 이미 다른 팀들은 모두 하산한 후였다. 선인봉을 늦뫼가 접수한 순간이기도 했다.

모처럼 선등을 서 주신 이정녕 선배님께 뭐라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될 지 모르겠다. 또한 등반의 자세나 운동방법, 마음 가짐에 대해 평소의 지론을 후배들에게 많이 가르침을 주셨다. 특히 선등 하는 사람의 마음 가짐에 대한 기억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선등을 서 봐야 진정한 바위의 맛을 아는 거야. 후등을 서서는 결코 선등하는 사람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또 바위의 진정한 맛과 멋을 알지 못해. 남들과 비슷하게 운동해서는 결코 선등을 설 수 없어. 주말은 물론이지만, 평소에도 꾸준한 운동을 하여 부상당하지 않도록 해야 해. 바위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겁이 많아. 겁이 많기 때문에 더욱 열심히 운동을 하는 거야. 꾸준히 등반에 참석하고, 열심히 하여 꼭 선등을 설 수 있도록 해. 그래야 진정 바위가 뭔지 알지.”

항상 여러 팀원들이 있어 개인적인 이야기를 할 기회가 없었는데,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풍성한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어서 참 좋았다. 가을의 초입에 최상의 조건 속에서 알찬 등반을 한 것은 천우신조가 없었다면 힘들었을 것이다. 하나님도 내 기도를 들어주신 것 같다. 앞으로 금주를 하고 더욱더 등반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여드릴 것을 약속하며...단촐했지만 여러 가지로 다양한 경험들을 할 수 있었던 좋은 등반이었다. 특히 암벽등반하는 분들이 “표범과 박쥐길은 갔었지?”라는 질문에 당당히 “예”라고 할 수 있어서 더욱 좋았던 것 같았다.

하산 후 뒤풀이 자리에서 말씀드렸지만, 선등을 서 주신 이정녕 선배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벌초로 참석을 못했던 여러 선배님들! 이제는 가을입니다. 등반으로 아름답게 물들이는 2012년의 가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추신:

용욱 형님, 몸이 안 좋다고 하던데...빨리 완쾌하길 빌겠습니다.

미옥 씨는 새롭게 개업을 준비한다고 하니...차질없이 진행 잘 하시길 바랍니다.

은기 선배님은 피해복구 및 벌초 잘 마무리하고 올라 오셨을 줄 믿고, 산에서 봬요.

한찬우 대장님과 희식 선배, 재곤 선배님도 벌초 잘 다녀오셨을 줄 믿습니다.

병조 누님은 약초 잘 캐셨지요? 담에 약초 맛 좀 보여주세요.

늦뫼정기회(?) 모임에 참석하셨던 회장님과 백인숙 대선배님들도 무사히 귀가하셨을 줄 믿으며, 추후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뵙길 기대하겠습니다.

기타, 선인봉에서 만났던 바름산악회의 동기인 천명래 선배(등반사랑), 이우행 선배, 홍인주 선배님도 건강하게 뵈어 반가웠습니다. 특히 홍인주 선배님의 대암벽반 졸업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